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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Alessio Lee _ 이종호 조회수 2503
작성자 fhole 작성일 2020-03-03 16: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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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에 한 번씩 크레모나에서 뵙고는 한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3년 전이다. 그때 아마도 크레모나 제작학교를 졸업하고 1 ~ 2년 뒤 였던 것이다. 졸업 후 누구의 작업실에서 일 하고 있었나?
: 2014년에 크레모나 제작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포르탄티의 공방에서 8개월정도 출,퇴근 하면서 일을 배웠다. 그 뒤로도 1년정도 꾸준히 찾아가서 많은 조언을 얻곤 했다. 2017년 크레모나에 공방을 열기전까지 포르탄티 외에도 많은 제작가들을 만나 교류했다. 크레모나는 제작가들이 많아서 서로 정보도 나누고 배우고 하는것에 있어 굉장히 좋은 도시다.

 

 

-마에스트로 뽀르딴띠의 성격은 어떤가? 왜냐면 에프홀에서 뽀르딴띠의 악기 소개와 인터뷰도 할 예정이다.
: 가르치실 때는 굉장히 엄격하셔서 많이 혼나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이 많은 사람이고 현악기 제작에 있어 매우 중요한 마에스트로다. 제작 기술뿐만이 아니라 제작가의 마음가짐 같은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배웠다. 독립해 공방을 열고 나서도 악기가 끝나면 보여드리기도 하고 가끔씩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를 다닐 때는 누구에게 사사했나?
: 처음에 1학년으로 입학해서 스칼피니(Scarpini)에게 배웠고 3학년 월반 시험을 통과하면서 스페르짜가(Sperzaga)로 바뀌었다. 스칼피니 선생님은 현재 은퇴하셨고 스페르짜가 선생님은 현재 학교 부교장이 되어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학교 운영도 하고 계시다.

 

 

-그 외에 자신의 메이킹을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 사실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다보니 누군가를 콕 집어 영향을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또한 악기라는 것이 정답이 정해진 것이 아닌 하나의 예술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저 다양한 것을 체험하고 받아 들이면서 내가 가야할 방향성을 정하고 있다.
 

 

-결혼 한 것으로 알고있다. 크레모나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 크레모나가 작고 정적인 도시라서 제작가로서 집중해서 일하기에는 최고의 환경이지만 살기에는 사실 재미가 없는 편이다. 그리고 타지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니 외롭기도 했는데 결혼후에는 삶이 많이 안정되었다. 와이프는 현재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최근 몇년간 한국에 관심을 가지는 이태리사람들이 많아졌다는게 확실이 느껴진다. 

 


-제작학교에 매년 많은 한국인들이 들어오는가?
: 졸업 뒤에는 많은 학생들과는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른다. 매년 10여명정도의 한국인 신입생이 크레모나 제작학교에 들어온다. 파르마나 밀라노 학교에도 한국인 학생이 있다고 들었다.

 

 

-바이올린 기준으로 한 대를 만드는데 걸리는 제작 기간은 어떤가?
: 대략 6주에서 8주 정도가 소요 된다. 제작가들마다 걸리는 시간이 다른데 이 정도가 평균적인것 같다 . 2대를 동시에 만드는 제작가들도 있어서 시도는 해봤지만 개인적으로 맞지 않았다. 이곳 크레모나에 와서 제작자들을 만나면, 모두 비슷한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출근 해서 작업, 점심 먹고 작업,  퇴근… 퇴근 이후와 쉬는 날의 모습들은 다 다르겠지만 출근과 퇴근 사이는 똑같은 모습이다. 조용히 혼자서 묵묵히 작업만 한다. 그것이 일년 이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생의 루틴이다.


악기제작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하루 아침에 좋은 악기를 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꾸준히 일하면서 조금씩 실력과 경험을 쌓아야 좋은 악기를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생활이 다들 비슷해지는 것 같다. 또한 크레모나의 차분한 분위기도 한몫 한다.

 


-작업 시 정해진 루틴이라는 것이 있는가.  일주일에 해야 할 양, 하루에 해야 할 양 등등.
: 그렇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악기를 만드는 각 과정에서 필요한 시간도 어느정도 일정하기에 악기를 시작하면 머리속에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한다. 항상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또 하루에 일하는 시간을 넘어서 일하기도 하는데, 그냥 일이 더 하고 싶은 날도 있고 시작했으면 끝을 내야 하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투피스 앞판이나 뒷판을 서로 붙이는 작업, 혹은 베이스바를 붙이는 작업은 악기의 소리나 내구성에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에 굉장히 정확해야 하는 일이라 도중에 멈추고 다음날 하려면 그 사이 나무들이 미세하게 틀어져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이태리에서 10년이다. 그 동안 뜨리엔날레에는 몇 번 출품했나.
: 그 동안 바이올린으로만 2번을 나갔다. 처음 출품은 2015년으로 학교를 졸업 후 1년 뒤였고 그 다음이 2018년 콩쿨이었다.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도 되고 제작가로서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국제 콩쿨에 최대한 참여하려고 하는데, 전세계에서 온 제작가들과 서로 악기를 비교해 가며 이야기 할 수 있어 배울 것이 많고 유익하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 10년 전 이태리에 도착했을 때 마음과 막 도착해서 부딪친 현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수능을 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갔고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그곳에서 진지하게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악기제작을 알게 되었고 정보를 찾아볼 수록 더욱 이 일에 매력을 느꼈다. 그렇게 전역후 1년동안 언어에만 매진하고 이곳에 왔다. 처음 이태리에 도착했을 때에는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처음 해보는 외국생활, 처음 사귀어보는 외국인 친구들 등 모든게 즐거웠다. 제작일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견습생을 거쳐 공방을 연 지금은 내 이름의 레이블이 붙은 악기를 만들고 판매하는 것에 무게감을 느낀다. 악기의 소리와 외관의 아름다움, 내구성등등 정말 생각할 것이 너무 많다. 앞으로도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이 있겠지만 매번 조금씩 나아지는 악기를 볼때마다 제작가로서의 보람을 느낀다.

 
-본인의 악기는 어느 나라에서 볼 수있는가
: 주로 이태리와 일본에서 판매되고 있다.

 

 

-제작가로서 추구하는 미적관점은?
: 아름다움에 있어서 화려함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설명하는게 쉽지는 않은데, 악기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과 상관없이 누구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올드악기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지금의 현악기가 정립되었던 바로크시대의 그림이나 조각, 건축물을 보는것을 좋아하는데 그 것이 악기의 라인과 비율을 결정하는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된다.

 


-본인이 좋아하는 바이올린 소리 혹은 방향성. 소리에 대한 요즘의 고민은
: 선명하고 깨끗한 소리 그리고 밝은 톤의 음색을 좋아한다. 이어폰이나 스피커를 살 때에도 저음이 강조되서 소리가 뭉게지는 제품보다 깨끗하게 소리는 구현해주는 제품을 좋아하는데 개인의 성향이 확실히 반영되는 부분인 것 같다. 다만 너무 이쪽 방향으로만 생각하다보면 울림이 약하고 볼륨이 작은 소리의 악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균형을 잡으려 노력중이다.

 


-어떤가. 선호하는 모델이 있나. 모델을 결정하고 두께나 아칭에 대해서는 어떤가. 나무를 고르는 기준은.
: 바이올린의 경우 스트라디바리모델을 좋아한다. 악기에서 바이블처럼 생각되어지는 제작가이기도 하고, 그래서 책이나 연구자료도 제일 많고 구하기 쉬운 편이다. 미적인 관점과 소리에 있어서도 가장 좋아하는 악기들이다.
 우선적으로 나무를 고를 때에는 뒷판은 단단하고 나무의 조직이 촘촘하여 밀도가 높은 것을 선호하며 무늬를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선택한다. 앞판은 무엇보다 나무의 결을 보고 결정하는데 소리를 판 전체로 전달하는 것에 중요한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아칭의 경우, 뒷판이 원피스인가 투피스인가로 모양을 달리한다. 두께는 또한 아칭의 모양과 나무의 강도로 결정하며 나무의 강도는 칼로 작업을 하면서 파악한다. 

 


-악기가 마무리 되면 의견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있는가
: 요즘은 부교장일로 바빠지셔서 힘들지만 악기가 완성되면 내가 학생일 때 마에스트로였던 스페르짜가 선생님과 이야기하곤했다. 그리고 졸업 후 마에스트로였던 포르탄티에게 보여줄 때도 있다. 또 크레모나에 지내면서 알게 된 여러 이태리 제작가들, 크레모나에 남아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후배들이나 다른 나라에서 온 제작가들과 서로 악기를 보여주고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소리는  연주가와 함께 들어보고 조정한다. 아마도 제작일을 하면서 가장 설레고 긴장되는 순간일 것이다.

 


-젊은 제작가라 아주 먼 미래에 대한 질문은 안하겠다. 제작 이후 10년이 흘렀다. 또 10년이 흐른 후 제작자 이종호는 어떤 모습인가. 여전히 동안을 유지할 것이고…
: 10년 뒤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악기를 만들고 싶고, 뒤늦게 제작일에 뛰어든 후배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있는 선배의 모습이라면 좋을것 같다. 한국인이 제작가로 크레모나에서 활동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나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열심히 살았다”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다면 만족할 것 같다.

 

현악기 제작가 Alessio Lee (이종호)의 손

 

제작자 이종호의 악기 보러가기

번호 제목

이수범 - 이수범 현악기

인연이 너무 길어 현악기 제작자 이수범과의 일반적인 인터뷰는 불가능하다. 제작자 이수범에 대한 질문 보다 현악기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질문지로 인터뷰를 대체 하고자 한다. 제작자 이수범이 원해서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그의 공방에는 항상 많은 첼로들이 수리 등을 대기하고 있다. 정말 좋은 첼로, 유명 연주자들의 첼로를 우연하게 라도 보고 싶다면 그의 공방에서 자주 들려 보면 된다. 오늘의 인터뷰 주제는 첼로이다.  -2000년을 기준으로 그전의 첼로 셋팅 그 후 지금까지의 첼로 셋팅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야가현에서 라센,스피어꼬레 현으로, 프렌치 브릿지에서 벨지움 브릿지로… 당연히 대중들이 알고 있는 첼로의 사운드도 변했다. 녹음에서의 방향도 바뀌었고, 퍼포먼스의에서의 첼로의 위치 변화,  대중들과 연주자가 원하는 첼로의 퍼포먼스의 위치, 즉, 솔로로서의 역할이 커지고… 특히 첼로에서 그 변화가 크게 느껴진다. 왜 일까? : 그

Fabrizio Portanti - 파브리지오 뽀르딴띠

2019년 한국에서 열린 A.L.I 전시회 기간 내내 같이 식사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이태리에서도 그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정작 인터뷰를 해야하는 상황에 인터뷰를 못했다.    보통은 공방에서 작업을 하는 순간에 옆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으면서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정리해서 인터뷰 내용을 쓰지만...영상을 보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공기의 흐름이 느껴질 정도로 제작에의 무거움, 그리고 그의 집중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뽀르딴띠의 리뷰에는 제작에 관련 된 인터뷰가 없다.    2019년 에프홀에서 주최한 알리 전시회를 위해 내한 하기 전에 그는 북한에 다녀왔다고 하여 놀랐다. 바이올린 제작 관련하여 북한에의 초청으로 한국에 오기 전에 이미 북한은 다녀왔다고…   짧거나 길게 그의 공방에서 일을

Alessio Lee _ 이종호

-몇 년에 한 번씩 크레모나에서 뵙고는 한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3년 전이다. 그때 아마도 크레모나 제작학교를 졸업하고 1 ~ 2년 뒤 였던 것이다. 졸업 후 누구의 작업실에서 일 하고 있었나?: 2014년에 크레모나 제작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포르탄티의 공방에서 8개월정도 출,퇴근 하면서 일을 배웠다. 그 뒤로도 1년정도 꾸준히 찾아가서 많은 조언을 얻곤 했다. 2017년 크레모나에 공방을 열기전까지 포르탄티 외에도 많은 제작가들을 만나 교류했다. 크레모나는 제작가들이 많아서 서로 정보도 나누고 배우고 하는것에 있어 굉장히 좋은 도시다.   -마에스트로 뽀르딴띠의 성격은 어떤가? 왜냐면 에프홀에서 뽀르딴띠의 악기 소개와 인터뷰도 할 예정이다. : 가르치실 때는 굉장히 엄격하셔서 많이 혼나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이 많은 사람이고 현악기 제작에 있어 매우 중요한 마에스트로다. 제작 기술뿐만이 아니라 제작가의 마음가짐 같은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Alberto Giordano - 알베르토 지오다노 [1]

2019년 이태리 제노아에서 마에스트로 Alberto Giordano와의 짧은 만남을 번역한 것이다.   “와이프와 함께 1 ~ 2명의 제자가 있기는 한데 내 악기는 100% 내 스스로 만들고 있다. 만드는 것 자체를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팩, 버튼 등 악기에 들어가는 최대한 모든 악세서리들을 직접 만들고 있다. 퍼플링도 만들어 쓴다. 파가니니의 캐논을 관리하던 전임자인 세자르 깐디의 전통이다. 깐디는 바이올린 케이스까지 만들었었다.”  사진의 1/2 사이즈 바이올린은 세자르 깐디의 작품이며, 바이올린 악세서리는 물론 케이스까지 깐디가 만들었다.    “만드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악기를 완성하고 나서 최대한 악기에 필요한 모든 파츠를 직접 만들고 있다. 가끔 기성품을 가공하여 마무리하기도 하지만 가능한 그 악기의 모델과 스타일에 맞는 파츠를 직접 만들고 있다. 기성품을 사용하는 것은 나에겐 마무리 단계에서 뭔가

Valery Prilipko - 발레리 프리립코

발레리 프리립코는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베르가모의 알프스 끝자락에서 그를 만났을 때 커다란 손으로 반겨주었다.   10여년 전에는 크레모나가 조용한 동네였다고 한다. 더 조용한 곳을 찾아 그는 현재의 베르가모의 알프스 끝자락으로 자리를 옮겼다. 확실히 이곳은 너무나도 조용한 곳이었다.    발레리는 러시아 태생이다. 전통악기인 발라라이카의 연주자였고, 발라라이카의 제작가이도 했다.   아래 내용은 그 와의 만남 동안 짧게 나눈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더 많은 내용이 있었지만 그가 권하는 와인을 모두 마셨을 때엔 이미 그와 나눈 이야기를 기억 할 수 없었다.    발레리는 이미 예전에 이태리 트리엔날레 콩쿨에서 비올라 부분 2위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트리엔날래에서 2위를 했던 비올라가 에프홀을 통해 판매된 것을 기억했다. 이미 그의 악기를

전용수 -viva string

-3년전 이태리 크레모나 길거리에서 만났다. 이번 미텐발트에는 출품을 하였나.: 이번에는 안 갔다. 이런 저런 일도 있었고, 올해가 칠순이다. 그래서 집사람과 해외여행을 좀 돌았다.   -제작가이기 이전에 비올라 연주자 시절을 이야기 나누고 싶다. 비올라를 전공하셨다. 졸업하시고 서울시향으로 바로 들어가신 건가.: 원래는 바이올린 전공이다. 2학년 때 비올라로 전향했다. 4학년 올라가자마자 서울시향을 들어갔다. 8개월 정도 시향 활동을 하고 있는 도중에 홍콩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오디션을 봤는데 결과가 좋았다. 매우 고민을 했다. 그때는 외국에 나가는 것이 매우 힘든 시절이다. 73년 말이니 박정희 정권 때이다. 당시 서울시향의 월급이 3만원이었다. 홍콩필에서는 주거 포함 28만원이었다. 유학도 가야겠고, 급료도 10배이상이니 안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홍콩 필에서 5년 반을 있었다. 홍콩 필에 재직할 때 운명적인 연주자를 만났다. 유럽에서는 최고의 비올리스트이

나용민 -Atelier d'archet (나용민 - 아뜰리에 다셰)

- 반갑다. 에프홀이다. 악기보다 어려운 것이 활인 것 같다. 좋은 활, 나에게 맞는 활을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 활을 볼 때 어떤 부분을 봐야하는가..: 일단 기본적으로 봐야하는 것이 나무의 선택이고 그 다음이 제작자의 제작 능력을 볼 수 있는 디자인과 워크맨쉽이다. 활에서 가장 중요한 연주 성능을 좌우하는 것이 나무이다. 어떤 나무를 선택해서 만들었냐에 따라 활의 성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나 정교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졌는지 봐야한다. 제작자의 제작능력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헤드와 프로그의 디자인 특히 라인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제작자 마다 자신들 만의 라인이 있다. 물론, 한 제작자의 활이라도 제작 초창기에는 선생님의 모델 이라든가 유명 모델 등을 따라 해보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자신만의 모델이 없다. 이후 연륜이 쌓인 후 자신만의 여러가지 모델을 유지한다. 물론 올드 활의 카피도 진행을 한다.   - 활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임동필 - Giuseppe Filius Im [1]

-두오모 돌탑에 괜히 올라간 것 같다. 너무 힘들다. 에너지를 다 소모했다.(웃음):아마도 돌로 만들어진 두오모 종탑 중에 이태리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덕분에 이번이 세번째로 올라간 것인데 나도 힘들었다.    -이번 트리엔날레 입상을 축하한다. 트리엔날레와 수상되는 형식에 대해서 말해달라.:각 악기들 분야, 즉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분야에서 1,2,3등을 뽑는다. 그리고 최고 제작가상과 최고 소리상이 있다. 추가로 30세 이하에게 주는 상도 2개가 있다. 최고 제작가상과 최고 소리상은 전체 분야에서 각 한 명씩만 뽑는다. 물론 파이널에 올라가면 영예상이 주어진다.    -이제 이해했다. 정리하면 각 악기 분야에서 파이널을 뽑고 그 중 각 분야별로 1,2,3등을 주고,각악기별이 아닌 이번 대회에 참가한 악기들 모두 중에 한대의 최고 제작가상, 한대의 최고 소리상을 준다로 정리하면 되는가. 그럼 최고 제작가상과 최고

김신석 - SHEMA STRING

 -에프홀에는 많은 위탁 악기들이 있다. 그런 악기들 중에는 오랜 기간 동안 연주가 안된 악기들이 있다. 그럴 경우 최소한 현, 브릿지, 사운드포스트 등 셋팅은 다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제작자들과 수리가들에게 셋팅을 의뢰한다. : 처음에 제작자의 의도한 아칭, 구조 등에 맞는 스탠다드한 셋팅을 먼저 한다. 전체적인 점검을 먼저 해보면 스탠다드한 셋팅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선 스탠다드한 셋팅을 위한 사전 작업이 필요하고 스탠다드한 셋팅을 첫 단계로 한다. 그런데 이 포인트에서 두께는 스탠다드한 것에서 벗어나는 부분이다. 내가 제작한 악기들이 아니기 때문에 두께와 특히, 악기가 건조해가는 과정에서 울림통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스탠다드한 셋팅과 함께 아칭, 울림통, 두께를 포함한 최종적인 셋팅을 연주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어드저스팅을 한다.  -한국에 오신지 얼마 안되었다. 개인공방을 오픈 한지 얼마 되었나.: 오픈 한지 7개월이

강정순 - J S Violin [5]

2년 전 현악기 제작가 강정순과 약속을 했다. 그 때 당시 제작가 강정순은 처가와 가까운 곳에 귀농을 하려한다 했다. 땅을 일구고, 집을 짓고 그곳에 공방을 차릴 즈음 인연이 되면 만나자고…     -집에 시계가 없다. 날씨나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하루를 계산하겠다. 혹, 전화가 오지 않는 이상 몇 시인지도 알 길이 없다.“전화도 잘 안 터진다. 지금 앉아계신 그 자리만 전화가 터진다. 워낙 시골에 산골짜기라…”     -정말 외진 곳이다. 땅을 일구고 집을 지으셨다. 물론 직접 지으신 것은 아니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길도 연결이 안된 아예 없는 장소를 사람 사는 곳으로 바꾸었다. 길도 없었고 이곳이 습지처럼 버려진 곳이었다.”     -귀농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솔직히 지금의 형태로 봐서는 귀농을 위한 공간은 아닌 것 같다. 조용한 삶을 위한 전원주택이다. 정말 산골짜기로 깊이 들어오셨다. 지방

이문태 - 이문태

서울에서 멀다고 하면 먼 익산에서 현악기 제작자 이문태를 만났다.   -주변 제작자분들에게 손이 굉장히 빠르다는 소리를 들었다. “잘 만들던 못 만들던 시작을 했으면 줄을 걸어서 들어봐야 한다. 만드는 과정에서 여기가 틀렸고 저기가 못 생겨지고 했다해서 방치하고 그러다보면 계속 만들다만 악기들만 늘어난다. 어떻게 되든 다작을 해보고, 거기에서 실수를 해야 다음부터 그 실수를 넘어갈 수 있거나 실수 이전 과정에서 그 실수를 인지하고 더욱 신경써서 좋은 악기가 나올 수 있다. 하물며 실수가 있다해도 넘어가고 다음 단계로 진행을 꼭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실수과 실력이 쌓이면 그것이 솜씨라고 생각한다.”   -손이 빠르다라는 것에서 제작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가“나의 경우, 바이올린, 비올라를 기준으로 했을 때 가장 무난한 것이 두 대를 동시에 물려서 진행하는 것이다. 세 대 정도는 무리가 있더라. 천천히 하나씩 몰아가는 스타일도 있지만 내 성격이

윤진섭 - 윤진섭 [2]

윤진섭의 비올라 한 대를 연주자에게 소리를 틔워달라고 요청한 이후 해당 비올라의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와 사운드 셋팅 작업을 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연주자가 그 자리에서 연주 후 사운드가 너무 맥시멈으로 잡혀 있다고 느꼈단다. 의도적으로 사운드를 강하게 잡은 것인지, 운반상에서 트러블이 생긴 것인가 궁금해 했다. 그래서 현 상태에서 소리를 틔우는 것 보다 한 번 더 확인하자는 의미로 다시 가져왔다. “이 비올라는 미국 콩쿨에 참가 했던 악기다. 콩쿨의 장소로 쓰이던 홀이 전체가 카페트가 깔려서 소리를 다 먹어버린다. 그래서 소리를 최대한 맥시멈으로 잡아서 셋팅 했다.”     -아, 그리고 이 비올라는 사진을 찍었는데.. 나무결을 살려서 깎으셨는데 그 결이 빛 반사로 인해 에프홀 부근의 아칭에 결이 드러난 채로 찍혔다. 몇 번을 찍어도 방법을 못 찾아서 그냥 진행했다. 그리고 카메라의 브랜드 특성인지 약간은 붉게 나왔다.“문제없다. 그리

구자홍 - VINNO CLASSIC [2]

- 비올라 전공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목원대학교에서 관현악과 비올라 전공이다. 전공을 마치고 유학을 떠났다. 국내에서는 연주자로서의 어려움이 있어서…. 어릴 적에 왼손에 화상을 입어 아무래도 전문 연주주자로서의 한계가 있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이태리로 유학을 갔다.”   - 제작을 이유로 떠난 것이 아닌가. “제작을 염두하고 떠났지만 연주도 목적이었다. 음악을 좋아하고 연주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고 젊었기 때문에 제작과 연주가 가능한 곳으로 떠난 것이다. 연주로는 한계가 분명 느꼈고 그래서 제작으로 진행 방향을 잡았다.”     - 이태리로 언제 갔는가. “한 97년으로 기억한다. 한국에서의 제작분야로는 거의 초기로 생각한다. 에프홀에 인터뷰가 된 몇 분도 거의 비슷하게 수학을 했다. 3학년으로 편입을 했다. 언어를 일년 정도 먼저 하고 3학년으로 들어갔다가 중간에 마에스트로에게 찾아가서 현장을 먼저 배우고 3학년을 다시 들어

신동진 - 비아체노 공방 [1]

-굉장히 어린 나이에 이태리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18살 때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97년, 고등학교를 졸업 하기 전에 3학년 2학기 즘에 이미 준비를 다 하고 있었다.”   -인터뷰에서 효정악기(효정악기의 대표가 신동진의 아버지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되는가. 악기에 관련 된 일을 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었나 싶다.“뭐, 효정악기에 대해서는 어차피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악기 제작이라는 것은 아버지의 권유가 제일 컸고, 선배 제작자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사실 더 큰 이유도 있는데…차마 인터뷰로는 조금 그렇다.(웃음)”     -18살에 가서 지금 32살 (2010) 이면 악기 세계에 발을 들인지 꽤 오래 됐다. “악기 세계라고 하면 그 시작점이 없다. 어릴 때부터 봐온 것이 악기고, 예를 들어 방학 때 용돈이 필요하면 아버지에게 가서 아르바이트로 악기제작 일을 도왔다.   -악기 제작이라는 일

김민성 - Liutaio [1]

2006. 10  Won bronze medal for cello in 11th Triennale competition of cremona.2006. 11  Won \"Certificate of merit\" for cello tone in 17th international competition of  VSA (Baltimore, Maryland)2007. 5  Was 4th place for cello tone in international competition of cello making in Manchester.2008. 8  Won Gold medal(cello) of 2nd Pisogne italian national violin making competition in progressional division.2009. 8  Won silver medal(cello) of 3rd Pisogne italian 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