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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권석철 -K&J 바이올린 스튜디오 조회수 18827
작성자 fhole*** 작성일 2009-08-27 22: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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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십년 전 권석철은 현악기 제작의 길을 가기위해 이태리 크레모나로 떠났다. 작년에서야 한국으로 들어온 그는 홍성에서 그의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하 인터뷰 전문.

 

 

 

 

 

-한국에 오신지 대략 1년이 되었다. 요즘 들어 현악기 제작학교에서 돌아 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크레모나의 경우 지금 40 ~ 50명 정도 있다. 그 중에 아주 소수가 외국으로 진출하고 대부분은 한국으로 돌아온다. 앞으로 한국은 제작자들간의 경쟁이 치열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3 ~ 4년 동안 입학생들이 줄고 있다."

 

-한국에서 돌아와서 바로 이곳(홍성)에서 자리를 잡으셨다. 왜 서울 서초동이 아니었나?

서울이 싫었다. 그냥 크레모나 같은 시골이 좋았다. 친지 분의 도움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조금 적막하다. 악기에 대하 공유할 사람이 적어서 지금은 적응이 되긴 했지만 처음엔 많이 적막했다.”

 

 

-한국에서의 현악기 제작 현실이 많이 어렵다.

"어렵다. 그러나 한가지 꼬집고 싶다. 한국 현악기 제작자는 아직 젊다. 500년 역사의 유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십 년 동안 크레모나에서 새악기를 많이 만져보고 음악가를 대동해서 소리도 많이 들어봤다. 크레모나의 시에 등록된 제작자가 150 ~ 200여명 된다.모든 악기를 다 만져보고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 많은 제작자가 만들어 내는 많은 악기들 중에 진지한 연주자가 진정 만족해 할 만한 악기는 아주 소수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자들은 꾸준히 좋은 소리 나는 악기를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다.

 

한국은 어떤가. 그런 저변이 확대된 문화도 없고 역사도 짧다.  현지 유학을 다녀와도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태산이다.한국 제작자가 한국에서 힘든 여러가지 이유중에 본인이 제일 큰 비중을 두고 보는 문제점은 바로 이것이다. 한 미국 제작자의 사이트 대문에 이런 문구가 또렷하게 적혀져 있다. "콸러티에 대해 집착하다(Obsessed with Quality)" 제작자인 우리는 과연 얼마나 콸러티에 집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연주자가 음표 하나 하나에 집착해 결국은 음악을 하나로 들리게끔 만드는 것과 같은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바로 좋은 악기가 나오지 않는다. 한국은 이제 시작이다."

 

 

-이태리에는 제작학교가 몇 군데 있나?

"크레모나, 굽비오, 밀라노, 빠르마에 있다.”

 

 

 

-현악기를 제작하겠다라는 마음은 어떻게 생긴 것인가?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좋아했다. 옛날 이야기지만 집에 꽤 오래된 스즈키 바이올린이 있었다. 전공을 한 것은 아니지만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정말 우연이었던 것 같다. 우연히 바이올린 이야기라는 제작 관련 책을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몰랐지만 두 번 세 번 읽다 보니 뭔가 끌리는 것이 있었다. 그냥, 바이올린 제작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과 똑 같은 것이다. 환상 같은 것이다. 굉장히 멋있어 보이고(웃음), 슈타이너, 스트라디 이런 것이 그냥 멋있어 보였다.

 

원래는 전공이 영어이었고 동시통역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재능이 없었던 것 같았다. 공부도 잘해야 하지만 동시통역은 순발력 등 이런 센스가 필요했는데 내가 그런게 쥐약이다. 워낙 느릿느릿 스타일이다. 고민을 많이 하다가 현악기 제작을 마음에 먹었다.”

 

 

-준비는 어떻게 했나?

아무것도 몰랐다. 크레모나라는 단어도 책에서만 봤지, 아무 것도 모르고 떠났다. 이태리어만 2 ~ 3개월 공부하고 크레모나로 떠났다.”

 

 

 

-크레모나의 과정은 어떤가?

크레모나 학교는 이론상 5년이다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데 일반 고등학교다. 졸업하면 딱 고등학교 졸업장이 나오는 거다. 고등학교인데 거기다 바이올린 제작을 첨가해서 기술학교가 된 것이다. 크레모나에서 3학년까지 다니고 밀라노 학교로 옮겨서 졸업했다.”

 

 

 

-사사한 스승들에 대해 알고 싶다?

"모던 바이올린 족 악기는 루카 프리몬(Luca Primon), 바로크 제작법은 에두아르도 고르(Eduardo Gorr)를 사사했다."

 

루카 프리몬(Luca Primon),

http://www.primonviolins.com/ENG.htm

 

 

에두아르도 고르(Eduardo Gorr)

http://www.eduardogorr.com

 

 

-학교에 제출한 악기 이후의 첫 악기는 어디에 있나?

한국에 있다. 첫 악기가 바로크 바이올린이다. 친구가 가지고 있는데, 좋은 악기가 아니라서 쓰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창피하다. 빨리 회수해야 하는데마치 새벽에 쓴 글 같아서 정말 창피하다.”

 

 

 

위 사진은 비올라 다 감바의 앞판을 작업하는 모습이다.

그의 작업대에 붙어 있는 early music이라는 문구가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를 보여준다. 권석철은 바로크 바이올린 등의 고악기 연구와 제작이 한창이다.

 

 

-크레모나 출신이시다. 제작하는 악기들이 지금 유행하는 크레모나 스타일을 느낄 수 있다고 볼 수 있나?

"당연하다. 크레모나 출신이라는 것은 당연히 그 지역의 스타일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고 이제는 스타일을 따라하기 보다는 개인적인 스타일을 만드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내 악기에는 크레모나의 느낌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악기 색상과 스타일에 관해서 어떤 추세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지금 오렌지 계열이 유행하는 것 처럼

"악기의 스타일에는 유행이있다. 바니쉬도 악기의 한 부분으로서 역시 유행이 있다. 크레모나에서 만들어지는 악기중 모라씨와 비쏠루티의 제자들이 주로 오렌지나 적색의 알콜칠을 많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직도 칠을 갖고 완성에 도달하기 위한 트레이닝을 하는 단계이므로 흉내내려는 노력은 하고 있다.

 

덧붙여서 말하지만, 바이올린 바니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다. 지난 세기에 독일 등지에서 생산된 공장제 들이 불투명한 칠을 많이 갖고 있는데 예술성 보다는 경제성을 더 목표를 둔 악기들이다. 악기가 예술성이나 미적인 가치를 가지려면 투명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무에 공들여서 만든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 칠로 나무를 가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연주자가 색상이나 스타일등, 예를 들어 스트라디를 카피해 주세요 라고 하면 가능한 일인가?

당연하다. 한국에서는 카피라는 단어가 온전하게 이해되지 않고 있다. 그 동안 들어온 악기들이 그랬기 때문이다. 공장제나 워크샵 악기를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 레이블에 카피라는 단어를 써 넣기도 했지만 높은 수준의 카피란 오리지널 악기를 높은 수준의 제작 기술로 제작자가 재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복사품이라는 개념이 아니다. 서양에는 굉장히 유명한 카피스트들이 있다. 그 카피라는 것은 오리지널 악기에 따라오는 복종적인 의미가 아니라 오리지널의 느낌을 살리되 제작자 자신의 예술적 주장을 넣은 것이다.” 정말 잘 된 카피를 하는 일은 보통 제작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요한다. 그 전에 훌륭한 카피스트가 되기가 무척 힘들다."

 

 

 

-고악기를 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운영하시는 사이트에서 보니 만드신 바로크 바이올린의 테일피스 사진을 봤다. 외람된 질문이지만 한국에서 고악기에 대한 수요가 있는가?

"당연히 많지는 않다. 한국에서 고악기를 떠나서 고음악이라는 것이 시작 단계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고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 바로크음악, 적어도 클래식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고음악을 알고 있다. 유학을 나갔던 10년 전만해도 고음악 음반을 듣는 것을 좋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시간 지나고 보니 시대가 바꿨다. 옛날 음반에서 머물던 사람들이 직접 보고 싶어 하고 한국인들이 연주하는 연주회도 많이 생겼다.

 

이런 흐름을 봐서 내가 하는 것(고악기 제작)이 무모한 도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래를 보는 것이다. 물론 5년 안에 갑자기 수요가 뛰고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도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다. 개척자 정신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고악기의 경우 스크롤 부분만 따로 목각하시는 분이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에서는 최초가 아닌가?

"바이올린 족 악기(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스크롤일 경우 내가 작업하지만  비올라 다 감바나 비올라 다모레 등등의 바로크 악기의 경우에 한해서 다른 전문 조각가 분께 작업 의뢰를 한다. 조각은 악기 제작처럼 또 다른 전문 분야다. 최고의 악기를 만들기 위해서 옳은 방법을 찾아내었을 뿐이고 최초라는 수식어는 필요치 않다. 좋은 악기를 만들어내려는 정성이 더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동업을 해서 성공적인 악기를 만드는 유럽의 고악기 제작자들도 몇 명 있다."

 

 

-저기 보이는 것은 쳄발로 같다. 쳄발로도 제작을 하시는 것인가?

쳄발로가 맞다. 제작을 하려고 했는데, 정말 힘든 일이다. 이게 혼자서 제작할 일은 아니다. 고음악을 좋아하고 쳄발로를 좋아해서 쳄발로 바디만 이태리에서 구매를 해서 마무리를 하려고 했는데 너무 갈 길이 멀고 깜깜해서 손을 놓고 있다.”

 

 

 

-악기 제작할 때 몰딩을 어느 스타일로 선택하는가?

"다양한 모델의 몰드를 갖고 있다. 옛 시대 명장의 스타일을 공부하기 위해서 스트라드나 델 제수의 몰드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제작자로서의 궁극적의 목표인 나만의 몰드도 만들어서 실험을 한다. 완성도를 갖는 개인적인 스타일의 몰드를 만들기는 쉽지는 않은 일이다. 주문 제작시 몰드 선택권은 당연히 주문자에게 주어진다. 다양한 몰드를 갖고 있지만 주문자가 요구하면 새로운 몰드도 연구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 

 

 

올해 처음으로 한국에서 여름을 지냈는데, 깜짝 놀랐다. 여름 습도가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정말 정상적인 악기 한 대를 잠시 받았는데 여름이 되어서 어느 날 그냥 사운드포스트가 넘어져 버렸다. 물론 한국의 여름이 습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악기를 만들기 시작하고 처음 맞는 여름이라한국에서 악기를 만들 때는 여름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현악기 제작자로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할 말이 무척 많은 질문이다. 나의 제작자관 그리고 앞으로 갈 길은 뚜렷하게 내 머리와 가슴에 각인이 되어있다. 나는 일단 끊임없이 공부하는 제작자가 되고 싶다. 악기 제작과 함께 관련 서적과 논문도 꾸준도 읽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힘든 일이지만 열심히 다른 제작자들과 대화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대화를 갈망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제작 세계에 대해서 알려주는 메신저 역활을 하고 싶다. 바이올린의 본 고장인 이태리로부터 멀어질 수록 현악기는 신비함이라는 베일에 더 가려지고 지나치게 과장되는 경우도 있다. 제작은 결국 세상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진실됨으로 접근하는 그리고 진실됨으로 성취하는 분야임을 알리고 싶다"

 

 

 

"악기 연주는 제작만큼이나 나의 열정을 불사르게 한다. 나의 고객은 나의 악기만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합주를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기 위해선 제작과 함께 열심히 악기 연습도......

한국은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올바른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만지대이다. 현악기 시장도 예외일수는 없다. 내가 믿는 동료들과 함께 올바른 현악기 시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볼까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결국은 악기 제작을 많이 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다. 아직도 젊고 부족하다. 열심히 실력을 쌓아서 '가르치는' 악기를 만들고 싶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델 제수, 니꼴로 아마티 등은 가르치는 악기다." 

 

현악기 제작자 권석철의 손

 

제작자 권석철의 악기 보러가기

 

  • f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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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24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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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프홀에는 많은 위탁 악기들이 있다. 그런 악기들 중에는 오랜 기간 동안 연주가 안된 악기들이 있다. 그럴 경우 최소한 현, 브릿지, 사운드포스트 등 셋팅은 다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제작자들과 수리가들에게 셋팅을 의뢰한다. : 처음에 제작자의 의도한 아칭, 구조 등에 맞는 스탠다드한 셋팅을 먼저 한다. 전체적인 점검을 먼저 해보면 스탠다드한 셋팅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선 스탠다드한 셋팅을 위한 사전 작업이 필요하고 스탠다드한 셋팅을 첫 단계로 한다. 그런데 이 포인트에서 두께는 스탠다드한 것에서 벗어나는 부분이다. 내가 제작한 악기들이 아니기 때문에 두께와 특히, 악기가 건조해가는 과정에서 울림통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스탠다드한 셋팅과 함께 아칭, 울림통, 두께를 포함한 최종적인 셋팅을 연주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어드저스팅을 한다.  -한국에 오신지 얼마 안되었다. 개인공방을 오픈 한지 얼마 되었나.: 오픈 한지 7개월이

강정순 - J S Violin [3]

2년 전 현악기 제작가 강정순과 약속을 했다. 그 때 당시 제작가 강정순은 처가와 가까운 곳에 귀농을 하려한다 했다. 땅을 일구고, 집을 짓고 그곳에 공방을 차릴 즈음 인연이 되면 만나자고…     -집에 시계가 없다. 날씨나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하루를 계산하겠다. 혹, 전화가 오지 않는 이상 몇 시인지도 알 길이 없다.“전화도 잘 안 터진다. 지금 앉아계신 그 자리만 전화가 터진다. 워낙 시골에 산골짜기라…”     -정말 외진 곳이다. 땅을 일구고 집을 지으셨다. 물론 직접 지으신 것은 아니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길도 연결이 안된 아예 없는 장소를 사람 사는 곳으로 바꾸었다. 길도 없었고 이곳이 습지처럼 버려진 곳이었다.”     -귀농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솔직히 지금의 형태로 봐서는 귀농을 위한 공간은 아닌 것 같다. 조용한 삶을 위한 전원주택이다. 정말 산골짜기로 깊이 들어오셨다. 지방

이문태 - 이문태

서울에서 멀다고 하면 먼 익산에서 현악기 제작자 이문태를 만났다.   -주변 제작자분들에게 손이 굉장히 빠르다는 소리를 들었다. “잘 만들던 못 만들던 시작을 했으면 줄을 걸어서 들어봐야 한다. 만드는 과정에서 여기가 틀렸고 저기가 못 생겨지고 했다해서 방치하고 그러다보면 계속 만들다만 악기들만 늘어난다. 어떻게 되든 다작을 해보고, 거기에서 실수를 해야 다음부터 그 실수를 넘어갈 수 있거나 실수 이전 과정에서 그 실수를 인지하고 더욱 신경써서 좋은 악기가 나올 수 있다. 하물며 실수가 있다해도 넘어가고 다음 단계로 진행을 꼭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실수과 실력이 쌓이면 그것이 솜씨라고 생각한다.”   -손이 빠르다라는 것에서 제작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가“나의 경우, 바이올린, 비올라를 기준으로 했을 때 가장 무난한 것이 두 대를 동시에 물려서 진행하는 것이다. 세 대 정도는 무리가 있더라. 천천히 하나씩 몰아가는 스타일도 있지만 내 성격이

윤진섭 - 윤진섭 [2]

윤진섭의 비올라 한 대를 연주자에게 소리를 틔워달라고 요청한 이후 해당 비올라의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와 사운드 셋팅 작업을 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연주자가 그 자리에서 연주 후 사운드가 너무 맥시멈으로 잡혀 있다고 느꼈단다. 의도적으로 사운드를 강하게 잡은 것인지, 운반상에서 트러블이 생긴 것인가 궁금해 했다. 그래서 현 상태에서 소리를 틔우는 것 보다 한 번 더 확인하자는 의미로 다시 가져왔다. “이 비올라는 미국 콩쿨에 참가 했던 악기다. 콩쿨의 장소로 쓰이던 홀이 전체가 카페트가 깔려서 소리를 다 먹어버린다. 그래서 소리를 최대한 맥시멈으로 잡아서 셋팅 했다.”     -아, 그리고 이 비올라는 사진을 찍었는데.. 나무결을 살려서 깎으셨는데 그 결이 빛 반사로 인해 에프홀 부근의 아칭에 결이 드러난 채로 찍혔다. 몇 번을 찍어도 방법을 못 찾아서 그냥 진행했다. 그리고 카메라의 브랜드 특성인지 약간은 붉게 나왔다.“문제없다.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