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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윤진섭 - 윤진섭 조회수 25228
작성자 fhole*** 작성일 2011-06-30 1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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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의 비올라 한 대를 연주자에게 소리를 틔워달라고 요청한 이후 해당 비올라의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와 사운드 셋팅 작업을 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연주자가 그 자리에서 연주 후 사운드가 너무 맥시멈으로 잡혀 있다고 느꼈단다. 의도적으로 사운드를 강하게 잡은 것인지, 운반상에서 트러블이 생긴 것인가 궁금해 했다. 그래서 현 상태에서 소리를 틔우는 것 보다 한 번 더 확인하자는 의미로 다시 가져왔다.
“이 비올라는 미국 콩쿨에 참가 했던 악기다. 콩쿨의 장소로 쓰이던 홀이 전체가 카페트가 깔려서 소리를 다 먹어버린다. 그래서 소리를 최대한 맥시멈으로 잡아서 셋팅 했다.”

 

 

-아, 그리고 이 비올라는 사진을 찍었는데.. 나무결을 살려서 깎으셨는데 그 결이 빛 반사로 인해 에프홀 부근의 아칭에 결이 드러난 채로 찍혔다. 몇 번을 찍어도 방법을 못 찾아서 그냥 진행했다. 그리고 카메라의 브랜드 특성인지 약간은 붉게 나왔다.
“문제없다. 그리고 바니시의 바닥에는 붉은 색을 깔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붉은 색이 조금씩 드러날 것이다.”

 

 

-이 악기를 계속 보다 보니 제작자 김민성, 박성현의 깔끔하게 떨어지는 클래식한 스타일과 일맥한 느낌이 든다.
“에이… 아직 멀었다. 그렇게 봐주면 감사하고 그 두 분에 같이 포함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초창기에는 이런 스타일이 많이 유행하고 많이 만들었는데 시장이 변한 건지 독일이나 미국에서는 별로 반응이 없다.

미국 콩쿨에서도 놀란 것이, 이틀 동안 악기를 오픈 하는데 이런 클래식 스타일은 악기는 사람들이 잡아 보지도 않고 그냥 건너 뛰더라. 참나… 뭐, 이제는 아주 취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몇 년에 이태리로 갔나. 그리고 그 전의 행적이 궁금하다.
“2002년. 건축 관련해서 학교를 다니다가 지방에서 활을 만드시는 분을 만났다가 이 일이 마음에 들어서 결정을 했다. 시골 남자들이 뭐 다 그렇겠지만 나무를 만지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한국에서야 배울 곳이 없어서 이태리로 갔고, 처음에는 2 ~ 3년 있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오래 있다 올지 몰랐다.”


-귀국은 언제 했나? 크레모나를 졸업하고 어떤 마에스트로를 사사했나.
“올해 귀국했다. 거의 9년이 넘었다. 졸업하고… 근데 어느 마에스트로 밑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많은 공방을 거쳤다. Negroni, Pistoni, Votini, Lazzari 같은 마에스트로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태리에서 돌아오기 전부터 많은 제작자분들에게 인터뷰 추천을 받았다. 원래 귀국 계획이 없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아버지 때문에… 몇 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연세 많으신 아버지 혼자 계시니까…”

 

-그럼 지금 아버님이 바라는 것은 하나 뿐이겠다(웃음). 장가가라고...
“(웃음)그렇다. 이제부터 노력해야 하는데…” 

 

 

-9년 동안 몇 대의 악기를 만들었나.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알코올 칠이라서 마무리가 조금 더 오래 걸린다.”


-오일이 더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닌가.
“오일은 3일 혹은 일주일이면 칠한다. UV케이스만 있으면 금방 처리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할 때 오일칠이 더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옛날 이야기다. 예전에야 자연광으로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UV를 사용해서 시간을 단축한다. 그리고 올드 칠의 경우 마음에 안들 경우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이유로도 시간이 더 짧게 걸린다고 본다.

 

악기는… 거의 한달에 한 대 꼴로 만든 것 같다. 진짜 많이 만들었다. 초창기에는 새벽 4시 5시까지 일을 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후반부에는 첼로를 많이 만들었다.”

 

 

-가지고 들어온 첼로가 많은가.
“한 대 만 있다. 나는 스타일을 계속 바꾸고 있기 때문에 내 눈 앞에 악기를 놔두고 싶지 않다. 칠도 그렇고 스타일도 그렇고… 현악기의 경우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워낙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지금의 스타일로 조금씩 바꾸는데 대략 5년이 걸린 것 같다. 계속 개인 모델만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전의 악기를 보고 싶지는 않다.”

 

 

-에프홀을 운영하면서 조금씩 연주자들의 시선이 바뀌고 있다. 국내 제작자들이 만든 악기에 대해 처음엔 팔짱을 끼고 한발 물러서서 악기를 바라만 봤지만 지금은 호평을 받는 악기들도 있다.
“동양사람들이 어디를 가도 인종차별을 받는다.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유럽 내에서 외국계 제작자들과 동등한 위치를 가지려면 최소한 3배 이상을 해야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나 자신만 해도 똑같은 가격과 똑같은 레벨의 악기라면 차라리 이태리 사람의 악기를 사겠다. 어쨌든 조금씩 열리고 있으니 한국에서도 좋은 제작자가 꾸준히 나올 것이다.” 

 

 

-한국 제작자들을 만나보니 3배 이상의 노력은 하고 있는 듯 하다. 지금 보다 좋은 날이 올까.
“당연히 온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문화적인 변화가 늦는 것을 감안하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최소한 몇 년 안에 올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현악기 역사가 짧다. 길게는 50년을 잡을 수 있지만 30년 정도라고 본다.  지금이 일본식 문화를 탈피하고 본토의 문화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그런 날이 온다고 본다.”

 

-그러한 변화가 온다면 국내 제작자들의 실력이 그 변화에 부응할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변화만 있다면 충분히 준비된 실력이 있다고 본다. 지금도 이태리에서 인정 받는 한국 제작자분들도 많다. 여기도 인정 받을 만한 악기를 제작하는 분들도 많아서 금방 좋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보가 많이 오픈 된 세상이라 이제는 묻지마 올드 보다는 새악기나 모던을 찾는 경향이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유학파들, 특히 독일 쪽 유학파들이 새악기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새악기…어쩔 수 없다. 좋은 올드 악기에 비하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새악기만의 좋은 장점이 있기 때문에 요즘은 여러 연주자들이 쓰고 있다. 취향과 발전성을 고려한다면 새악기도 좋은 악기로써의 장점이 있다.

 

발전성이라는 포인트에서 난 제작자로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연주자 혹은 학생이 내 악기를 좋아하고 악기와 같이 발전 하겠다면 원가에라도 악기를 만들어 주고 싶다.”

 

 

-찾는 사람들에 비해 제작자들의 첼로가 너무 적다. 재료나 기간, 소리의 안착 기간 등 이유야 당연한 것이지만, 어떤가 첼로를 만들 계획이 있나.
“올 여름부터 첼로를 만들 계획이다. 아까도 언급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연주자가 첼로의 주문을 해서… 문제가 바로크 첼로라 고민스럽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첼로가 훨씬 재미가 있다. 그래서 이태리에서도 첼로를 더 많이 만들었다. 물론 첼로가 더 많은 손이 가고 소리에 대해서도 바이올린에 비해 더 많은 시간과 손이 간다.” 

 

 

-많은 모델을 시도하고 있는데 소리 또한 윤진섭이 원하는 방향이 있을 것이다.
“솔직히 그것을 의도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방향을 캐치하는 것이 시간이 꽤 많이 든다. 처음에 모델을 만들고 악기에 줄을 걸고 소리를 잡는 것을 대략 6개월로 치고 소리가 안착을 하는데 또 6개월이 걸린다 치면 약 1년이 걸린다. 결국 소리를 모델로부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하고 결과가 나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서 딱 잘라서 방향이 잡혔다라고 말하는 것이 힘들다. 왜냐면 그렇게 진행이 되고 있는 과정 중이기 때문이다.” 

 


-소리 셋팅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이태리에서 돌아 온지 얼마 안됐다. 국내 연주자들과 이태리의 연주자들 사이에 소리 셋팅에 대한 차이가 있는가.
“솔리스트. 국내에 악기를 찾는 분들 모두가 솔리스트들이다. 다 솔리스트다. 모두 퍼스트를 지향하지 않는가. 그래서 모두들 쉽게 뻗어 나가고 볼륨이 큰 것을 좋아한다. 협연을 자주 하게 되는 환경이 되면 분명 그것을 위한 셋팅을 원할 텐데 아직 그런 환경은 아닌 것 같다. 음악이라는 것은 화음이다. 퍼스트는 퍼스트 만의 쏴주는 소리가 나고 세컨은 퍼스트를 끌어 안아주는 소리를 내야 하는데…지금 전공하는 모든 학생들이 다 솔리스트의 개념으로 배우고 있으니… 유럽 쪽에서는 그러한 환경 덕분에 가볍고 경쾌하게 감싸주는 소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조금씩이지만 한국에서도 소리에 대한 취향이 다양해지는 것를 느끼고 있다. ”

 


-결혼하고 자녀가 커서 이 일을 하고 싶다면.
“뭐, 하고 싶다면 해도 된다. 하지 마라, 해라 식의 문제는 아니지만 자녀가 여럿이라면(웃음) 한 녀석 정도는 해줬으면 한다. 근데, 제작자들이 워낙 성격이 모나서 누가 나 같은 놈한테 시집 올는지…(웃음).”

 

 

-맨 처음 만든 악기는 어디에 있는가.
“일본. 처음에는 백통을 많이 했다. 2학년 3학년 때에는 백통이 한 달에 한 대 이상 나왔다. 습관적이었다. 그 당시 네그로니에게 배우고 있었는데 악기를 많이 만드는 만큼 스팩과 경험이 쌓일 것이다라고 해서 그리 많이 만들었다. 안 좋은 점은 나중에 악기의 스타일을 바꿀 때 고생을 한다. 항상 습관처럼 손에 익혀 놓은 스타일을 버리는 것이 꽤 힘들기 때문이다. 칠은 한 3학년 말 때부터 올린 것 같다.” 

 

 

-이제 비올라 소리가 처음에 비해 조금 동글동글해 진 것 같다. 에프홀을 운영해보니 10명 중 8명이 마음에 안 든다 라고 한 악기가 누구에게는 너무 마음에 드는 악기가 되더라. 취향과 실력, 위치의 문제가 참 복잡하다.
“어쩔 수 없다. 취향의 문제다. 어디서 스트라디의 악기의 구해드려도 취향에 맞지 않다면 좋은 악기가 아닌 것이다.

 

광주에 있을 당시에 수리와 셋팅을 많이 했는데 퍼스트의 악기만 셋팅을 한 것 같다. 아니, 퍼스트와 세컨의 구분 없이 대부분이 원하는 소리로 셋팅을 했다. 그러다 오케에서 세컨 수석인 분의 악기를 셋팅을 했는데 그분에게는 그 셋팅과 소리가 아닌 것이었다. 까랑까랑하고 음색 풍부하게 소리가 잘 쏴지는 셋팅을 해드렸더니 그분이 실망하시면서 나는 퍼스트가 아닌데… 나는 따뜻한 소리가 좋다라고 하셔서 정말 미안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중 어떤 것이 더 애착이 가는가.
“첼로. 따뜻하고 편하고… 바이올린은 뭐랄까… 너무 예민하다. 뭐, 첼로가 만들 때 마음이 편하다. 개인적으로는 바이올린이나 첼로나 에너지 소모가 같은 것 같다. 처음 첼로를 만들 때 오십견, 담이 와서(웃음) 너무 고생했는데, 차츰 첼로나 바이올린이나 에너지 소모는 같아졌다.”


-바로크는 어떤가.
“바로크도 했다. 학교 다닐 때 장학금 준다고 해서 비올라 다 감바를 만들었더니, 준다는 장학금은 안주고 악기만 스트라디 박물관에 걸려있다. 운이 좋아서 박물관에 걸려있기는 하지만(웃음)… 아마 스트라디 박물관 사이트에 있는 사진에도 내 악기가 있는 것이 보인다. 삐져서 다시는 바로크 만드나 봐라 싶었는데 바로크 첼로 주문이 들어왔다(웃음)” 

 

 

-앞으로의 목표라면.
“제작자가 목표라면 뭐 있나. 지금 작업 중인 바이올린 완료하고 여름 즘 첼로를 만들 것이다. 원래 계획과 내 스타일이라면 첼로가 벌써 두 대가 나와 있어야 하는데…
그것 말고는… 없다.”

 

 

현악기 제작가 윤진섭의 손

 

제작자 윤진섭의 악기 보러가기

  • f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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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30 16:11
  • tonky***
    바이올린 초초보라 이런분이 계시다는게 너무 뿌듯하고 좋네요. ^^ 정말 잘 보고 갑니다.
    2012/11/30 14:03
  • tonky***
    바이올린 초초보라 이런분이 계시다는게 너무 뿌듯하고 좋네요. ^^ 정말 잘 보고 갑니다.
    2012/11/3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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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수 -viva string

-3년전 이태리 크레모나 길거리에서 만났다. 이번 미텐발트에는 출품을 하였나.: 이번에는 안 갔다. 이런 저런 일도 있었고, 올해가 칠순이다. 그래서 집사람과 해외여행을 좀 돌았다.   -제작가이기 이전에 비올라 연주자 시절을 이야기 나누고 싶다. 비올라를 전공하셨다. 졸업하시고 서울시향으로 바로 들어가신 건가.: 원래는 바이올린 전공이다. 2학년 때 비올라로 전향했다. 4학년 올라가자마자 서울시향을 들어갔다. 8개월 정도 시향 활동을 하고 있는 도중에 홍콩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오디션을 봤는데 결과가 좋았다. 매우 고민을 했다. 그때는 외국에 나가는 것이 매우 힘든 시절이다. 73년 말이니 박정희 정권 때이다. 당시 서울시향의 월급이 3만원이었다. 홍콩필에서는 주거 포함 28만원이었다. 유학도 가야겠고, 급료도 10배이상이니 안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홍콩 필에서 5년 반을 있었다. 홍콩 필에 재직할 때 운명적인 연주자를 만났다. 유럽에서는 최고의 비올리스트이

나용민 -Atelier d'archet (나용민 - 아뜰리에 다셰)

- 반갑다. 에프홀이다. 악기보다 어려운 것이 활인 것 같다. 좋은 활, 나에게 맞는 활을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 활을 볼 때 어떤 부분을 봐야하는가..: 일단 기본적으로 봐야하는 것이 나무의 선택이고 그 다음이 제작자의 제작 능력을 볼 수 있는 디자인과 워크맨쉽이다. 활에서 가장 중요한 연주 성능을 좌우하는 것이 나무이다. 어떤 나무를 선택해서 만들었냐에 따라 활의 성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나 정교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졌는지 봐야한다. 제작자의 제작능력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헤드와 프로그의 디자인 특히 라인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제작자 마다 자신들 만의 라인이 있다. 물론, 한 제작자의 활이라도 제작 초창기에는 선생님의 모델 이라든가 유명 모델 등을 따라 해보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자신만의 모델이 없다. 이후 연륜이 쌓인 후 자신만의 여러가지 모델을 유지한다. 물론 올드 활의 카피도 진행을 한다.   - 활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임동필 - Giuseppe Filius Im [1]

-두오모 돌탑에 괜히 올라간 것 같다. 너무 힘들다. 에너지를 다 소모했다.(웃음):아마도 돌로 만들어진 두오모 종탑 중에 이태리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덕분에 이번이 세번째로 올라간 것인데 나도 힘들었다.    -이번 트리엔날레 입상을 축하한다. 트리엔날레와 수상되는 형식에 대해서 말해달라.:각 악기들 분야, 즉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분야에서 1,2,3등을 뽑는다. 그리고 최고 제작가상과 최고 소리상이 있다. 추가로 30세 이하에게 주는 상도 2개가 있다. 최고 제작가상과 최고 소리상은 전체 분야에서 각 한 명씩만 뽑는다. 물론 파이널에 올라가면 영예상이 주어진다.    -이제 이해했다. 정리하면 각 악기 분야에서 파이널을 뽑고 그 중 각 분야별로 1,2,3등을 주고,각악기별이 아닌 이번 대회에 참가한 악기들 모두 중에 한대의 최고 제작가상, 한대의 최고 소리상을 준다로 정리하면 되는가. 그럼 최고 제작가상과 최고

김신석 - SHEMA STRING

 -에프홀에는 많은 위탁 악기들이 있다. 그런 악기들 중에는 오랜 기간 동안 연주가 안된 악기들이 있다. 그럴 경우 최소한 현, 브릿지, 사운드포스트 등 셋팅은 다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제작자들과 수리가들에게 셋팅을 의뢰한다. : 처음에 제작자의 의도한 아칭, 구조 등에 맞는 스탠다드한 셋팅을 먼저 한다. 전체적인 점검을 먼저 해보면 스탠다드한 셋팅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선 스탠다드한 셋팅을 위한 사전 작업이 필요하고 스탠다드한 셋팅을 첫 단계로 한다. 그런데 이 포인트에서 두께는 스탠다드한 것에서 벗어나는 부분이다. 내가 제작한 악기들이 아니기 때문에 두께와 특히, 악기가 건조해가는 과정에서 울림통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스탠다드한 셋팅과 함께 아칭, 울림통, 두께를 포함한 최종적인 셋팅을 연주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어드저스팅을 한다.  -한국에 오신지 얼마 안되었다. 개인공방을 오픈 한지 얼마 되었나.: 오픈 한지 7개월이

강정순 - J S Violin [3]

2년 전 현악기 제작가 강정순과 약속을 했다. 그 때 당시 제작가 강정순은 처가와 가까운 곳에 귀농을 하려한다 했다. 땅을 일구고, 집을 짓고 그곳에 공방을 차릴 즈음 인연이 되면 만나자고…     -집에 시계가 없다. 날씨나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하루를 계산하겠다. 혹, 전화가 오지 않는 이상 몇 시인지도 알 길이 없다.“전화도 잘 안 터진다. 지금 앉아계신 그 자리만 전화가 터진다. 워낙 시골에 산골짜기라…”     -정말 외진 곳이다. 땅을 일구고 집을 지으셨다. 물론 직접 지으신 것은 아니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길도 연결이 안된 아예 없는 장소를 사람 사는 곳으로 바꾸었다. 길도 없었고 이곳이 습지처럼 버려진 곳이었다.”     -귀농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솔직히 지금의 형태로 봐서는 귀농을 위한 공간은 아닌 것 같다. 조용한 삶을 위한 전원주택이다. 정말 산골짜기로 깊이 들어오셨다. 지방

이문태 - 이문태

서울에서 멀다고 하면 먼 익산에서 현악기 제작자 이문태를 만났다.   -주변 제작자분들에게 손이 굉장히 빠르다는 소리를 들었다. “잘 만들던 못 만들던 시작을 했으면 줄을 걸어서 들어봐야 한다. 만드는 과정에서 여기가 틀렸고 저기가 못 생겨지고 했다해서 방치하고 그러다보면 계속 만들다만 악기들만 늘어난다. 어떻게 되든 다작을 해보고, 거기에서 실수를 해야 다음부터 그 실수를 넘어갈 수 있거나 실수 이전 과정에서 그 실수를 인지하고 더욱 신경써서 좋은 악기가 나올 수 있다. 하물며 실수가 있다해도 넘어가고 다음 단계로 진행을 꼭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실수과 실력이 쌓이면 그것이 솜씨라고 생각한다.”   -손이 빠르다라는 것에서 제작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가“나의 경우, 바이올린, 비올라를 기준으로 했을 때 가장 무난한 것이 두 대를 동시에 물려서 진행하는 것이다. 세 대 정도는 무리가 있더라. 천천히 하나씩 몰아가는 스타일도 있지만 내 성격이

윤진섭 - 윤진섭 [2]

윤진섭의 비올라 한 대를 연주자에게 소리를 틔워달라고 요청한 이후 해당 비올라의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와 사운드 셋팅 작업을 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연주자가 그 자리에서 연주 후 사운드가 너무 맥시멈으로 잡혀 있다고 느꼈단다. 의도적으로 사운드를 강하게 잡은 것인지, 운반상에서 트러블이 생긴 것인가 궁금해 했다. 그래서 현 상태에서 소리를 틔우는 것 보다 한 번 더 확인하자는 의미로 다시 가져왔다. “이 비올라는 미국 콩쿨에 참가 했던 악기다. 콩쿨의 장소로 쓰이던 홀이 전체가 카페트가 깔려서 소리를 다 먹어버린다. 그래서 소리를 최대한 맥시멈으로 잡아서 셋팅 했다.”     -아, 그리고 이 비올라는 사진을 찍었는데.. 나무결을 살려서 깎으셨는데 그 결이 빛 반사로 인해 에프홀 부근의 아칭에 결이 드러난 채로 찍혔다. 몇 번을 찍어도 방법을 못 찾아서 그냥 진행했다. 그리고 카메라의 브랜드 특성인지 약간은 붉게 나왔다.“문제없다.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