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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용 - 라무자 아카데미 조회수 14407
작성자 fhole*** 작성일 2010-06-21 18: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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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패질 소리가 끊이지 않는 라무자 아카데미에서 현악기 제작자 장용을 만났다.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 취미로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현재 배우고 있는 학생들 중 유학 준비생들이 반 이상이다.”

 

 

-그렇다면, 제작에 대한 스승의 입장도 있지만 유학을 보내는 선배의 입장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겠다. 어떤가? 걱정이 많이 되시겠다. 손재주도 그렇고 성격적인 면도 그렇고, 또한 그곳에 도착해서 생활을 잘 하는 것 까지 신경을 쓰셔야 하니

내가 하는 일은 악기를 잘 만든다 못 만든다 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의 성격에 맞게 맞춰가면서 악기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나도 악기 제작을 시도 해보고 싶었는데, 워낙 성격이 결과를 빨리 보고 싶어하는 성격이라 그 동안 제작자분들을 만나보고 느낀 것이 내 성격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일이겠다 생각했다.

악기 제작 관련해서 처음 상담을 할 때 절대 그런 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성격적인 면 보다 열의, 열정이 먼저이다. 열의가 있어서 온 사람에게 일부러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린 제작이라는 것은 자기가 여러 방면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진 성격적인 면을 제작에 자연스럽게 끼워 맞춰야 한다. , 내면적으로 자신을 컨트롤해서 제작자가 되어야 만들 수 있다.

 

제작을 위한 물리적인 방법, 수치를 알려주고 대패질하는 법을 알려주고 이런 것들은 당연한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더 중요한 것은, 신기하게도(웃음)… 당사자에게는 스트레스이겠지만 정신적인 면에 대해서도 간섭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학생을 계속 가르치다 느낀 것인데 정신적인 면을 건드리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와 똑같다.

뒤 칠판에 써있는 것을 봐라. ‘비인부전뭐 간단히 말자하면 사람이 안되면 배울 수 없다라는 뜻이다. 사람으로서의 그릇이 되지 않으면 담을 수 없다. 줘도 못 먹는 것이다.”

 

 

-가르쳐보니 열의라든지 손이라든지 부족하다, 다른 길을 찾아봐라 라고 유학을 말린 적이 있는가.

처음 시작할 때 학생들의 열의를 본다. 열의가 없이 오는 경우도 있다. 산업디자인과 출신인 학생이 있었는데 손재주 하나는 기가 막혔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너무 기쁜 학생이다. 가르치는 만큼 눈으로 좋은 결과를 만드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손재주만 있지 그릇, 열의가 없었다. 그런 학생은 현악기가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잘 만들 것이다. , 그만두라는 이야기는 안 했지만 스스로 포기하고 나갔다.”

 

 

-제일 나이 어린 학생은 몇 살이었나.

고등학교 2 학년. 그 친구도 처음에 오지 말라고 했었다. 가치관이 아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난 보수 중에서도 보수 진보이다. 굉장히 FM적인 움직임 속에서의 변화를 즐긴다.”

 

 

-20년이 됐다. 90년에 가셔서… 96년에 밀라노도 가셨다.

지금이야 크레모나에서도 제작과 수리 파트가 나눠져 있지만, 물론 크레모나에도 수리 과목도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네글(Negri)이라는 선생님이 계셨던 밀라노의 학교가 수리 파트로 유명했다. 밀라노 시립 박물관, 베네치아 박물관의 현악기 담당이셨다. 삐에몬테 학파이시고, 그 분 댁이 또리노 근처라 과다니니, 로까의 동네였다. 좋은 환경이기 때문에 밀라노에서 수리파트 공부를 위해 공부했다.”

 

 

-크레모나를 졸업하고 나서 또 밀라노의 학교에 들어가신 것이다.

밀라노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크레모나 졸업했다면서 왜 왔냐고 놀리시곤 했다. 가기를 잘 했다. 잘 배우고 왔다.”

 

 

-한국에 들어오시고 몇 대의 악기를 만드셨나.

정확히 기억 못하겠다.”

 

 

-기억을 못 하실 정도면 꽤 많이 만드신 것이다. 에프홀 시작 후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제작자라는 타이틀만 걸고 악기를 안 만드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분들은 국내 토양의 문제라고 말씀들 하시지만 그런 토양 속에서도 만드시는 분들도 있다.

토양이 그렇기 때문에 나 같은 경우는 변칙을 하는 것이다. 현악기 제작 안에서 존재하기 위해 제작 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제작 교육은 내 스타일에 맞는 일이다. , 크레모나 후배들도 다 알겠지만 초기의 대부분 후배들이 나의 도움을 받았다. 아무래도 내 스타일이 그렇기 때문인 것 같다.”

 

 

-표현이 웃기지만 연배로 따져보면 크레모나 출신으로서 거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연배시다. 그만큼 부담이 크셨겠다.

크레모나 출신 중에 한국 입국은 제일 처음으로 들어왔다. 솔직히 이태리 크레모나 출신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서초동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알아주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실패했다. 들어와서 좀더 한국적인 바탕에 다가갔어야 했는데 너무 유럽스타일을 고집했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브릿지를 얇게 쓴다든지 트리트먼트를 한다든지별 것도 아닌데, 유럽 정통의 수치와 바탕을 고집해서 운영을 했었다. 연주자와 싸우면서 고집을 피웠었다. 또 너무 정통적인 제작과 기법만 고집을 했던 시절이었다. 정통에서 벗어나면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크레모나에서 현악기 제작자에게 가장 큰 욕이 목수라는 표현이다. 목수라는 직업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는 그렇게 표현을 했다. 10, 20년이 지나니 앤틱이라든지 카피라든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악기는 다양하게 있구나 라고 느꼈다. 이제는 시대에 흐름에 맞게 흘러가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제작에 대한 철학을 뭉게 버리기 위한 정신적 싸움을 많이 했다. 정신적인 화합의 결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약력을 보니 음악과를 졸업 하셨다.

졸업이 아니다. 수료를 했다. 기타를 쳤다. 원래는 연주자로서 스페인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다. 그때 당시 음..85년이다. 서울대가 1회로 기타 전공을 뽑았었다. 사실, 어릴 적부터 통기타니 전자기타를 쳤었는데, 클래식기타를 접하곤 클래식의 무궁무진한 넓이에 감동 받아 전공으로 마음을 정했었다. 근데, 서울대의 기타 전공을 한 명 뽑더라. 최종 4명의 엔트리에 들어갔다가 떨어졌다. 떨어진 이후 심사위원이었던 선생님에게 연락을 받고 타 학교에서 기타를 전공했다. 그 선생님의 경우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 기타학교를 졸업하시고 그곳에서 수학할 때 아르바이트처럼 기타 수리며 악기 제작을 하셨었다.”

 

 

-그 선생님을 통해 크레모나나 악기 제작의 길을 가게 된 것인가.

그렇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다. 군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선생님에게 인사 차 들려서 악기 제작 쪽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 드리자마자 그래? 그럼 내일 가. 학교 관두고 내일 가.’라고 하셨다. 농담인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바로 떠나시길 바라신 것이었다. 마음을 정하기가 훨씬 편했다.”

 

 

-이전에 인터뷰를 한 김 남현 선생님이 장용 선배님을 만나면 인터뷰 내용으로 적기는 뭐하지만 정말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장용 선배님처럼 발이 넓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거지부터 게이까지(웃음)…

일부러 그랬다. 학교 만큼은 철저하게 다니고 남는 시간에는 정말 많은 문화와 경험을 했다. 그런 것이 진정한 유학생활이라고 생각했다.”

 

 

-악기 만들기 시작하시면 얼마나 걸리나.

일반적인 기간은 있지만, 뭐 빨리 만들면 한 달에도 가능하지만 6 개월이 걸릴 때도 있다.”

 

 

-최근에 만든 바이올린은 콩쿨에 입선하고 바로 판매가 되었다.

콩쿨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앞에 서서 깃발 들고 먼저 나아가야 후배들과 학생들이 따라 온다. 시간에 맞추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은 악기인데 바로 인연을 찾아갔다.”

 

 

-이태리에서 배우면서 악기, 그리고 제작에 대한 생각과 이제 가르치는 입장에서의 악기, 제작에 대한 생각이 다르지 않을까.

전체적으로 봐서는 수치에 의해서 진행된다. 허나 악기 제작은 목수의 일이 아니다. , 내가 가르치는 것의 목표는 악기 제작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악기 제작자를 키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치에 의해 처음 대패질을 할 때 분명 만족스러운 결과가 안 나온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 대패질과 더불어 이런 저런 방법을 다 동원한다. 사람이 그렇다. 결과를 꺼내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제대로 된 제작자로서의 철학이 있다면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저런 방법을 동원한다면 좋은 대패질이 나올 수 없다.

그런 것이다. 깎을 수 있는 여러 방법 중에 힘들고 숨어 있는 이유를 명심하고 대패질을 계속한다면 좋은 결과 뿐만 아니라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이 그냥 만드는 것과 현악기 제작과의 차이이다.”

 

 

-그 대답의 연장선에서 다시 묻겠다. 어떤 제작자는 현악기는 이미 수치와 내용이 다 밝혀져 있다. 그래서 난 카빙기 등의 기계를 사용한다. 난 기계에 익숙하다. 꼭 손으로 깎아야 하는 것인가. 손과 기계에 대해서 언쟁하고 싶다면 손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전기 코드 뽑고 해라 라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정신력에 대한 결과물, 그 결과물의 차이는 얼마 안된다. 5%, 10% 정도의 차이 뿐이다. 기계든 손이든 90%는 다 가능하다. 시간의 차이뿐이다. 그러나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은 그 이후이다. 이후 10 20년 뒤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 이후의 차이에서 기계를 쓰는 사람은 10%의 벽를 절대 넘을 수 없다. 기계로 그것을 뛰어넘는다면 내가 내 손을 갈겠다. 기계로는 90%의 완성을 쉽게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현악기는 그 마지막 10%가 전부이다. 지금 나도 완성된 모습은 아니지만 지금껏 해 온 것들을 바탕으로 난 앞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10%, 그것이 전부이다. 90%는 똑같다.”

 

 

-학생들에게는 기계 사용에 대한 것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기계를 쓸 수 있도록 한다.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기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다만, 취미로 하시는 분들에게는 기계 사용에 대한 설명과 과정을 알려준다. 기계를 사용함에서도 분명 장단점이 있다. 취미의 경우 기계에 대한 선택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장인으로서 배움의 길을 가고 있는 학생들과는 끝까지 싸워 기계 및 기타 방법을 모두 못 쓰게 끝까지 싸운다(웃음).”

 

 

-무식한 질문인데, 장용의 현악기의 특징은.

어려운 질문인데기존에 있는 수많은 명기들, 하다 못해 현존하는 제작자들의 악기는 빼고 죽은 제작자들의 악기에 대한 연구도 안 끝났다.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접근을 하는 후배들을 보면 가끔 부럽기도 하다. 아직도 내 모델이 없다. 언젠간 내 모델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쉽게 보자면 본인의 초창기 악기와 최근 악기에는 세부적인 발전은 있겠지만 큰 차이는 없겠다.

그렇다. 그것이 악기 제작의 묘미이다. 가끔 악기에 옻칠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난 물어보고 싶다. 오일바니시, 알코올 바니시, 믹스 바니시, 그외의 특수한 바니시 등 그 수 많은 레시피들을 다 연구해보고 옻칠을 하는 건지시도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허나 내가 보수적인지 몰라도 선행되어야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에프홀을 시작하고 많은 제작자들을 만나면서 현악기에 대한 의미를 나름 세운 것이 있다. 미학적 기준으로만 보자. 아름다운 얼굴과 못 생긴 얼굴의 차이는 고작 몇 미리 이다. 그 얼굴 안에 갖춰야 할 것들은 다 있다. 구성은 다 되어 있어도 고작 몇 미리의 차이로 인해 우리는 미추를 결정하고 동일한 얼굴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 관찰자의 시각에서는 미추의 구분이 가능하지만 분명 실력 있는 성형외과 전문의라면 그 미묘한 차이를 알 뿐더러 의미 또한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이올린 제작이라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제작을 배우는 과정이 4년 내지 5년이다. 물론 그 기간이 손에 익혀야 하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바이올린의 수치의 차이는 몇 미리 이다. 아칭 만 봐도 겨우 몇 미리 차이다. 그러나 그 1, 2 미리 안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 애타는 작업이고 시간이 걸려야 하는 작업이다.

 

현악기 제작에서 연필로 나무에 선을 긋는다 치자. 그 연필선을 3개로 나눈다. 그 얇은 연필선을 아웃라인, 센터, 인라인으로 나눠서 어떤 기준에 맞춰서 나무를 깎느냐 까지 접근한다. 0.1 미리의 싸움이다.

 

 

바니시는 현악기의 소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존과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존과 아름다움을 위해 바니시가 필요하다. 그러나 원래는 화이트 상태 즉, 백통의 상태가 가장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 악기 소리에 최소한의 마이너스 효과를 주기 위해서 천연 바니시를 한다. 바니시를 칠 할 수 없기 때문에 백통을 만들 때 이미 그 마이너스 효과를 생각하고 제작을 해야 한다.”

 

 

이태리어 중에 아마또레(Amatore)라는 말이 있다. 아마추어라는 뜻이다. 내포된 뜻으로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라는 의미도 있다. 아마또레는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말한다. 현악기 제작은 아마또레이어야 한다.”

 

 

-공장제 저가 악기를 제외하고 중국 악기에 대해 논하고 싶다.

지금 중국 악기에 대하 평가를 하라면잘 만들었다. 잘 만들었는데 기계..기계다. 기계로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손이 기계다. 중국은 오히려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기계보다 사람이 만든다. 그러나 기계처럼 만들어진 악기들이다. 의미가 부여된 악기가 아니다. 아마도 하이클래스의 중국의 실력 있는 제작자들이 속이 탈 것이다.”

 

 

-아름다움과 소리,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 현악기다. 소리를 내는 물건이니 소리가 먼저 아닐까.

물론 둘 다 좋아야 한다. 소리가 좋고 아름답지 못한 악기도 좋지 않고 그 반대의 경우는 더 안 좋은 경우다. 크레모나 콩쿨의 경우 제작 200, 소리 200점을 채점한다. 마에스트로들이 제작에 대한 채점을 하고 전문 연주자들이 연주를 통해 소리를 채점한다. 그 과정을 통해 파이널을 결정하고 추려진 악기들에서 100점의 점수를 더 채점해서 총 500점의 점수로 등수를 나눈다. 그런 것을 보면 악기라는 예술적인 물건은 두 가지 포인트를 모두 갖추어야 한다. 콩쿨을 준비하는 제작자의 경우 제작에 대한 포인트만 치중하는 경우가 있다.

 

소리가 절반이다. 진정한 제작가란 두 가지를 모두 챙겨야 한다. 한 가지라도 부족하다면 그것은 제작자로서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대부분의 아름다운 악기가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작하신 비올라를 보니 생각나는 건데 현재 에프홀에 국내 제작자들의 비올라가 5 대가 있다. 5대가 모두 첨예하게 다르다. 비올라의 형태는 왜 이렇게 다양한 것인가.

크기에 있어서 소리에 예민함이 바이올린 보다 덜 하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신체에 맞게 사이즈가 정해지는 것이다. 정해진 폭 안에서는 확장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태리 출신들이나 독일 출신들은 유학이라는 것, 정통한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으로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국내에서 제작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국내파 제작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실력이 우선이다. 단지 외부, 비주얼하게 보여주는 것이 포인트라면 콩쿨을 노려야 한다. 단시일 내에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콩쿨이 있다. 그런 콩쿨을 항상 시도해야 한다. 시간의 문제지만 어떻게 발현하느냐의 포인트로는 콩쿨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

개인적으로는 제작자 장용의 완성이다. 공익적인 목표는 중국도 일본도 이미 활성화된 제작학교가 많다. 이전 인터뷰를 보니 김 남현 그 친구가 건물을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는데 난 그 건물에 조금 더 체계적인 제작학교를 만들고 싶다(웃음).

 

 

현악기 제작자 장용의 손

 

제작자 장용의 악기 보러가기

  • f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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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2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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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프리립코는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베르가모의 알프스 끝자락에서 그를 만났을 때 커다란 손으로 반겨주었다.   10여년 전에는 크레모나가 조용한 동네였다고 한다. 더 조용한 곳을 찾아 그는 현재의 베르가모의 알프스 끝자락으로 자리를 옮겼다. 확실히 이곳은 너무나도 조용한 곳이었다.    발레리는 러시아 태생이다. 전통악기인 발라라이카의 연주자였고, 발라라이카의 제작가이도 했다.   아래 내용은 그 와의 만남 동안 짧게 나눈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더 많은 내용이 있었지만 그가 권하는 와인을 모두 마셨을 때엔 이미 그와 나눈 이야기를 기억 할 수 없었다.    발레리는 이미 예전에 이태리 트리엔날레 콩쿨에서 비올라 부분 2위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트리엔날래에서 2위를 했던 비올라가 에프홀을 통해 판매된 것을 기억했다. 이미 그의 악기를

전용수 -viva string

-3년전 이태리 크레모나 길거리에서 만났다. 이번 미텐발트에는 출품을 하였나.: 이번에는 안 갔다. 이런 저런 일도 있었고, 올해가 칠순이다. 그래서 집사람과 해외여행을 좀 돌았다.   -제작가이기 이전에 비올라 연주자 시절을 이야기 나누고 싶다. 비올라를 전공하셨다. 졸업하시고 서울시향으로 바로 들어가신 건가.: 원래는 바이올린 전공이다. 2학년 때 비올라로 전향했다. 4학년 올라가자마자 서울시향을 들어갔다. 8개월 정도 시향 활동을 하고 있는 도중에 홍콩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오디션을 봤는데 결과가 좋았다. 매우 고민을 했다. 그때는 외국에 나가는 것이 매우 힘든 시절이다. 73년 말이니 박정희 정권 때이다. 당시 서울시향의 월급이 3만원이었다. 홍콩필에서는 주거 포함 28만원이었다. 유학도 가야겠고, 급료도 10배이상이니 안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홍콩 필에서 5년 반을 있었다. 홍콩 필에 재직할 때 운명적인 연주자를 만났다. 유럽에서는 최고의 비올리스트이

나용민 -Atelier d'archet (나용민 - 아뜰리에 다셰)

- 반갑다. 에프홀이다. 악기보다 어려운 것이 활인 것 같다. 좋은 활, 나에게 맞는 활을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 활을 볼 때 어떤 부분을 봐야하는가..: 일단 기본적으로 봐야하는 것이 나무의 선택이고 그 다음이 제작자의 제작 능력을 볼 수 있는 디자인과 워크맨쉽이다. 활에서 가장 중요한 연주 성능을 좌우하는 것이 나무이다. 어떤 나무를 선택해서 만들었냐에 따라 활의 성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나 정교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졌는지 봐야한다. 제작자의 제작능력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헤드와 프로그의 디자인 특히 라인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제작자 마다 자신들 만의 라인이 있다. 물론, 한 제작자의 활이라도 제작 초창기에는 선생님의 모델 이라든가 유명 모델 등을 따라 해보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자신만의 모델이 없다. 이후 연륜이 쌓인 후 자신만의 여러가지 모델을 유지한다. 물론 올드 활의 카피도 진행을 한다.   - 활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임동필 - Giuseppe Filius Im [1]

-두오모 돌탑에 괜히 올라간 것 같다. 너무 힘들다. 에너지를 다 소모했다.(웃음):아마도 돌로 만들어진 두오모 종탑 중에 이태리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덕분에 이번이 세번째로 올라간 것인데 나도 힘들었다.    -이번 트리엔날레 입상을 축하한다. 트리엔날레와 수상되는 형식에 대해서 말해달라.:각 악기들 분야, 즉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분야에서 1,2,3등을 뽑는다. 그리고 최고 제작가상과 최고 소리상이 있다. 추가로 30세 이하에게 주는 상도 2개가 있다. 최고 제작가상과 최고 소리상은 전체 분야에서 각 한 명씩만 뽑는다. 물론 파이널에 올라가면 영예상이 주어진다.    -이제 이해했다. 정리하면 각 악기 분야에서 파이널을 뽑고 그 중 각 분야별로 1,2,3등을 주고,각악기별이 아닌 이번 대회에 참가한 악기들 모두 중에 한대의 최고 제작가상, 한대의 최고 소리상을 준다로 정리하면 되는가. 그럼 최고 제작가상과 최고

김신석 - SHEMA STRING

 -에프홀에는 많은 위탁 악기들이 있다. 그런 악기들 중에는 오랜 기간 동안 연주가 안된 악기들이 있다. 그럴 경우 최소한 현, 브릿지, 사운드포스트 등 셋팅은 다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제작자들과 수리가들에게 셋팅을 의뢰한다. : 처음에 제작자의 의도한 아칭, 구조 등에 맞는 스탠다드한 셋팅을 먼저 한다. 전체적인 점검을 먼저 해보면 스탠다드한 셋팅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선 스탠다드한 셋팅을 위한 사전 작업이 필요하고 스탠다드한 셋팅을 첫 단계로 한다. 그런데 이 포인트에서 두께는 스탠다드한 것에서 벗어나는 부분이다. 내가 제작한 악기들이 아니기 때문에 두께와 특히, 악기가 건조해가는 과정에서 울림통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스탠다드한 셋팅과 함께 아칭, 울림통, 두께를 포함한 최종적인 셋팅을 연주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어드저스팅을 한다.  -한국에 오신지 얼마 안되었다. 개인공방을 오픈 한지 얼마 되었나.: 오픈 한지 7개월이

강정순 - J S Violin [3]

2년 전 현악기 제작가 강정순과 약속을 했다. 그 때 당시 제작가 강정순은 처가와 가까운 곳에 귀농을 하려한다 했다. 땅을 일구고, 집을 짓고 그곳에 공방을 차릴 즈음 인연이 되면 만나자고…     -집에 시계가 없다. 날씨나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하루를 계산하겠다. 혹, 전화가 오지 않는 이상 몇 시인지도 알 길이 없다.“전화도 잘 안 터진다. 지금 앉아계신 그 자리만 전화가 터진다. 워낙 시골에 산골짜기라…”     -정말 외진 곳이다. 땅을 일구고 집을 지으셨다. 물론 직접 지으신 것은 아니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길도 연결이 안된 아예 없는 장소를 사람 사는 곳으로 바꾸었다. 길도 없었고 이곳이 습지처럼 버려진 곳이었다.”     -귀농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솔직히 지금의 형태로 봐서는 귀농을 위한 공간은 아닌 것 같다. 조용한 삶을 위한 전원주택이다. 정말 산골짜기로 깊이 들어오셨다. 지방

이문태 - 이문태

서울에서 멀다고 하면 먼 익산에서 현악기 제작자 이문태를 만났다.   -주변 제작자분들에게 손이 굉장히 빠르다는 소리를 들었다. “잘 만들던 못 만들던 시작을 했으면 줄을 걸어서 들어봐야 한다. 만드는 과정에서 여기가 틀렸고 저기가 못 생겨지고 했다해서 방치하고 그러다보면 계속 만들다만 악기들만 늘어난다. 어떻게 되든 다작을 해보고, 거기에서 실수를 해야 다음부터 그 실수를 넘어갈 수 있거나 실수 이전 과정에서 그 실수를 인지하고 더욱 신경써서 좋은 악기가 나올 수 있다. 하물며 실수가 있다해도 넘어가고 다음 단계로 진행을 꼭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실수과 실력이 쌓이면 그것이 솜씨라고 생각한다.”   -손이 빠르다라는 것에서 제작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가“나의 경우, 바이올린, 비올라를 기준으로 했을 때 가장 무난한 것이 두 대를 동시에 물려서 진행하는 것이다. 세 대 정도는 무리가 있더라. 천천히 하나씩 몰아가는 스타일도 있지만 내 성격이

윤진섭 - 윤진섭 [2]

윤진섭의 비올라 한 대를 연주자에게 소리를 틔워달라고 요청한 이후 해당 비올라의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와 사운드 셋팅 작업을 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연주자가 그 자리에서 연주 후 사운드가 너무 맥시멈으로 잡혀 있다고 느꼈단다. 의도적으로 사운드를 강하게 잡은 것인지, 운반상에서 트러블이 생긴 것인가 궁금해 했다. 그래서 현 상태에서 소리를 틔우는 것 보다 한 번 더 확인하자는 의미로 다시 가져왔다. “이 비올라는 미국 콩쿨에 참가 했던 악기다. 콩쿨의 장소로 쓰이던 홀이 전체가 카페트가 깔려서 소리를 다 먹어버린다. 그래서 소리를 최대한 맥시멈으로 잡아서 셋팅 했다.”     -아, 그리고 이 비올라는 사진을 찍었는데.. 나무결을 살려서 깎으셨는데 그 결이 빛 반사로 인해 에프홀 부근의 아칭에 결이 드러난 채로 찍혔다. 몇 번을 찍어도 방법을 못 찾아서 그냥 진행했다. 그리고 카메라의 브랜드 특성인지 약간은 붉게 나왔다.“문제없다.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