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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성훈 - 정성훈 스트링 조회수 12805
작성자 fhole 작성일 2010-06-21 12: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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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만남이 너무 잦아서 인터뷰 내용이 많이 줄 것 같다.(웃음) 밖에 첼로가 한대 있다. 참 괜찮은 녀석으로 보인다.

아… 빨리 끝내야 하는데, 매번 밀리고 있다. 실험성을 가지고 만들었다. 앞판을 열어보면 내부가 산처럼 구불구불하다. 이 첼로는 이태리 시절 친구집에서 만들었다. 지하여서 습기도 많고 춥고...정말 어렵게 어렵게 만들었다.

첼로는 참… 많이 만들고 싶어도 재료값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 한 대 팔려야 다음 것을 만들 수 있다.

 

 

-몇 년에 이태리로 넘어갔는가?

"98년, 21살 때이다."

 

 

-가장 어렸을 것 같다.

"뭐, 고등학교 졸업 하자마자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럼 그 때면 동기 분들이다 형 누나, 삼촌뻘이었겠다.

어릴 때 가기는 갔는데, 너무 철 없던 시절이라 그 때는 사실 어떻게 살겠다 라는 개념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은 후회가 된다. 그래서 인터넷 등에서 이런 일에 대한 진로 상담을 할 경우 조금 나이를 채우고 가라고 조언한다. 멋 모르고 간 내 모습이 생각나서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그 어린 나이에 왜 이태리로 갔는가?

우연이다. 아버님의 친구분이 취미로 첼로를 했었는데 악기를 제작하는 직업에 대한 언급을 아버님에게 전했고 미술을 공부하고 있던 때라 아버님의 권유도 있어서 바로 이태리로 떠났다. 친구에게 배운 클래식 기타에 흠뻑 빠진 시절이긴 했지만 사실 음악에 대한 어떤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 뭔가 제작자로서의 깊이 있는 이야기(웃음) 예를 들어 열정이라든지 신비감이라든지… 이런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제작자로서의 열정이나 깊이에 대하서는 이태리 이전에는 없었다. 다행히 이태리 도착 이후 깊은 철학과 열정을 가진 동문들 무엇보다 혹독하게 기초정신을 가르쳐 주신 첫번째 스승님이신 로렌쪼마르키 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뒤늦게 정신 차린 위험한 케이스다(웃음).

 

 

-왜 이태리로 갔는가?

이태리 밖에 몰랐다(웃음). 떠나기전에 이태리 출신의 제작자 선배를 만난 것도 계기이고, 그분이 이태리 출신이시라서 그런지 이태리를 추천했고 당연하게 이태리로 간 것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 된 시절이라면 이것저것 따져봤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환경이 좋은 크레모나로 간 것은 잘한 일이다 "

 

 

-21살에 떠나 거의 7년을 거주했다. 처음 언어문제는 어떠했나.

뭣도 모르는 나이인 21살이다. 뭣도 모르고 떠나니 언어에 대한 장벽은 없었다. 백지 상태여서 훨씬 편했다.

 

 

-갔을 때 악기 전공 베이스로 온 한국 사람들이 있었나? 있다면 악기 제작면에서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악기 전공 베이스가 있던 한국 사람은 그 당시 별로 없었다. 외국 사람들은 조금 있었다. 악기 제작에 대한 어떤 차이는 처음에는 거의 없다. 어차피 악기 소리를 잡는다든지, 다양한 연구 등을 해보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니까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다. 내 생각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어떤 영향을 받는가가 중요하다. 내 경우 몇 선배들과의 만남과 조언이 지금의 제작자로서의 자리를 마련해준 계기가 된 것이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그렇다면 그때 당시 대부분의 유학생들의 악기 제작에 대한 시작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옛날에는  손재주가 좋다는 분들이 많이 접근했다. 그 이후로 소리라든지 악기 제작 자체에 대한 큰 의미를 두고 오는 사람들이 늘었고 특히 연주자 출신들도 많이 늘었다. 좋은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수리가 들어온 바이올린: 이태리 현악 제작자 비솔루티의 바이올린

 

 

-악기 제작자라는 직업을 가지기 위한 성향이라든지 준비된 자세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건 간단하다. 여러가지 변화하는 아름다운 각기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내야하는 조각가가 손재주와 창작성을 타고나야 한다면 여러가지 다양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야 하는 악기 제작자는  어느 정도의 손재주와 깊이있는 집요함,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정형화된 모습의 악기를 반복해서 만드는 것이다. 얼굴 같은 것을 조각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깊이있게 파고드는 집요함이 깔려 있다면 손재주는 시간으로도 극복 가능한 부분이다 . 시작하는 입장에서 손재주가 좋은 사람은 오히려 눈에 띄는 학생이 된다. 진행도 빠르고 이쁘고… 학교에서도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하고...여기다가 깊이까지 더한다면 그이상 바랄 것이 없으련만 많은 제작자들이 그것에서 조금 더 발전한 것에 만족하고 새악기 소리는 어쩔 수 없어 하고 단정 지어 만족하고 마는 것이 안타깝다."

 

"손재주만 믿고 시작한다면 처음에는 주목을 받을 수 있겠지만 성장판의 닫힘이 굉장히 짧다는 이야기이다. 악기의 소리와 외형이 완벽하다고 칭송받는 각국의 제작자들은 그만큼 많은 실패를 오랫동안 반복한 사람임을 의미한다. 꾸준히 유학을 문의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때마다 내가 말하는 답은 ,아주 심각하게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악기제작을 해야겠다고 생각 될 때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 가시라고 대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유학까지 가서 크레모나 제작학교 졸업을 안 한 이유가 무엇인가. 아니면 못 한 것인가. 뭐, 솔직히 현악기 제작이라는 것이 의사처럼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지만 아까운 생각이 든다.

안 한 이유는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웃음). 머리가 좋은 사람은 학교에서 월반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론 수업 등을 월반을 한다. 실기는 무조건 해야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론 수업을 월반하고 그 시간에 실기 수업에 매진을 하고 나는 그 시간에 수학에 매달리고, 이론 수업에 매달려 있는 것이 시간이 너무 아깝게 생각되었다. 실기수업의 시간배정이 조금 더 많았더라도 그런 불만들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 결과적으로 3학년 시험을 보기 며칠 전 수업시간중 실수로 손등을 칼로 그었다. 시험 보는 날 붕대를 풀고 아직 다쳐 쓰린 손으로 어떻게든 시험을 끝내보려 했지만 운명의 장난인듯 이번엔 검지손가락을 그었는데 인대가 끊어져 다시 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 학교측에선 다시 3학년 과정을 이수해야만 한다고 하니 더이상의 선택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 그리고 나폴리에 있는 악기점 '류따르떼' 라는 곳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크레모나에서 4년, 그리고 나폴리에서는.

나폴리에서는 대략 6개월 정도 있었다. 류따르떼라는 샵 처럼 운영되는 공방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다시 크레모나로 돌아왔다. 결정을 빨리 내리는 편이라 나폴리에서 생활을 경험하고 바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니 악기의 활에 대한 궁금증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2년재인 크레모나 활 학교 입학으로 이어졌다.  하루4시간 온종일 실기 수업만이 있어 몸은 좀 힘들었지만 너무 좋았고 그곳은 졸업을 했다.(웃음)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일 자체만으로는 굉장히 즐겁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이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가다보니 악기 제작에 대해 좀더 심도 깊게 생각하게 된 시점이 한국에 귀국하기 거의 마지막 때라 돌아온 이후 여기저기 악기에 대해 깊이있게 이야기 할 곳이  많지 않고 좋은 재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 안타깝다"

 

 

-부산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랜 시간 고향의 가족과 친구랑 떨어져 있었고 혼자 생각하고 실험할 시간이 필요해 부산에서 공방을 시작했다. 그러곤 올해 서울로 올라왔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악기들은.

거의가 이태리에서 만든 것들이다. 한국에서는 여러가지 실험을 하느라 몇 대 만들지 않았다. 예전 악기들은 만든지가 오래되어 나무가 잘 말라서  그런지 깊은 소리를 내어준다.

 

 

-소리는 자신 있다면 취약한 부분은 어떤 것인가.

소리도 자신있다 라고 하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의 내포적인 표현이다 .취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리도 계속 발전 시켜야 하고 외형적인 부분도 더더욱 신경을 써서 앞으로 해야 하는 이다.모든 면에서 평생을 바쳐 발전시켜 나가야 할 부분이다

 

 

-겸손한 대답을 하는 사람에게 집요한 질문이지만(웃음), 덜 발전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자. 자신이 생각할 때 잘 만든다고 생각하는 제작자와 비교할 때 지금 덜 발전된 부분에서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개념. 악기를 보면 확실히 개념이 박혀 있는 악기들이 있다. 모델부터 칠까지 개념이 박혀 있는 악기들이 있다. 개념이 있는 제작자가 만든 악기에는 개념이 보인다. 난 지금껏 소리에 대한 시간적 치중이 많았다. 시간 투자를 많이 해서 외형에 대한 투자가 늦춰진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앞으로 새 악기를 만들면 그 때가서 인터뷰를 하자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소리와 외형의 균형이 잡힌 악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앞으로 만들 새 악기에 대해서 설명 해 달라. 이전 악기와의 차이점이라든지.

개념! 모든 면에서의 개념.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소리까지… 소리의 경우 아무래도 지금 한국의 연주자들의 추구하는 소리로, 사람들이 원하는 소리로 만들 것이다. 외형은…외형 또한 중요하지만 우선은 소리가 먼저다. 외형에 맞춰서 소리를 끼워 넣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소리를 위해 외형이 존재해야 하고 그 후 그 외형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처음엔 소리가 잘 나는 악기라면 외형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추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밸런스 좋고 소리 꺼내기 쉬운 악기를 많이 선호 했다. 결국 지금의 연주 실력에 맞는 악기를 고르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과 연습이 흐르면서 악기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아직 내 악기는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갈아 타는 배와 같다고 생각이 든다. 시간과 연습이 쌓이면 그때야 내 악기를 만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언젠가는 지금 악기도 팔고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악기도 분명 상품이기 때문에 소리와 외형 모두 중요하겠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뻐야 잘 팔리지 않겠는가(웃음).

악기 제작은 종합 예술이다. 악기는 이쁘면서 소리가 잘나야 한다. 이쁘면서 소리가 잘 나게 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절대로 소리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악기 뒷판에 왜 무늬가 들어가는가. 음향학적으로 봤을 때 무늬가 없는 나무가 소리의 전달이 훨씬 좋다. 무늬는 동일한 재질의 단절된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늬가 있는 나무를 쓰는 이유는 아름다움 때문이다.

악기는 세가지가 모두 들어가야 한다. 실용성, 소리, 외형적인 면, 어느 하나도 치우치거나 배제할 수 없다. 요즘에는 오일칠 의 묘한 매력에 빠져  내 악기와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하려고 하는데 재료가 도착을 안 한다(웃음).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좋은 악기를 고르는 방법을 모르겠다. 나름 많은 제작자도 만나고 그들의 악기도 자세히 보고  중국제 악기, 공장악기 등등 많이 보아오니 좋은 악기와 그렇지 못한 악기 두 그룹으로는 대략 나눌 수 있겠는데, 좋은 악기들을 좋은 순서대로 줄을 세우라면 못하겠다.

그 정도를 알려면 제작을 한 번 해보면 된다. 이런 이런 부분이 힘든 부분이구나, 그런데 이 악기는 그 부분이 잘 되어있구나. 이런 식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여담인데 나이가 많거나 혹은 나이가 들어보이면 장인으로서의 포스(?)가 더욱 강해 보인다. 나이에 비해 너무나도 동안이다.

그래서, 인터뷰 사진은 최대한 나이가 들어 보이게 찍어줬으면 한다(웃음). 아니면 어둡게라도 처리 해 달라. 말을 들어보니 동안이 제작자로서의 핸디캡이 될 것도 같다.

 

 

-악기 세팅의 경우 연주자가 원하는 것을 모두 수용하는가. 예를 들어 악기의 세팅 기준을 넘어설 정도의 요구라면 어떤가.

왠만하면 다 연주자가 들어주는 방향으로 하고 있다. 아마추어이건 프로건 다양한 요구사항이 있기 때문에 모두 수용한다. 단 세팅의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수용할 수가 없다. 범위를 벗어나면 분명 악기에 문제가 생긴다.

 

 

-다음 악기에 대한 계획이 있을 것이다.

대략적인 계획은 세웠다. 모델도 거의가 정해졌다. 이제 시작할 텐데 아마도 4달 정도 뒤면 완성할 것이다."

 

 

-제작자로서의 꿈은.

일단은 좋은 악기를 만드는 것이 제일 큰 목표이고, 현악기라는 것을 스스로 내가 잘 아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한다. 큰 꿈이라면 한국의 현악기 세계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이 되고 싶다.

 

 

현악기 제작자 정성훈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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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2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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